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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이야기

전시리뷰

 

전시 Review (2007. 8월)

                                                                       Yi Soongu


시간의 간격이 빠르고 행위와 결과가 성급한 시대이다. 진위성과 실천성의 여부는 고사하고 스스로를 기량과 예술성이 넘치는 작가라고 오해하는 예술 주변부가 있다. 한평생을 한결같은 인내와 실천력으로 작품을 제작해내는 작가가 있는가하면, 기껏 중년을 갓 넘은 나이임에도 스스로 나르키소스의 묘연한 미궁에서 허우적거리며 몇몇들과 의기투합 한다. 조루적인 정신의 결과들이다. 속설에 "착각은 자유다"라는 말이 있다. 정말로 자아도취에 의한 혼돈과 무질서의 정신구조에 합당한 말이다. 이미지 혼돈의 시대에 혼돈을 부추기는 작업들을 스스럼없이 양산해내는 실태에 어이가 없기도 하다. 그 행태를 말린다고 될 문제는 아니지만 혹세무민하는 형국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제발 착각의 경도가 깊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그러나 그 병을 아무도 못 말리는 이 시대에 살고 있다. 다만 시각이 괴로울 뿐이다.

요즘 유행은 학력 커밍아웃이다. '방글방글 웃던 그녀들'이 유난이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실력은 실천력으로 가늠하는데 학연, 지연에 의한 사슬구조의 문제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 시기에 그만큼의 속여 온 학력이 없었다면 현재의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 여차저차해서 그런 방향으로 흘렀다는 핑계성 회피의 무마성 뒷수습과 일단 대중을 속였다는 윤리관은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런 이면에는 일류와 지식에 대한 독단적인 사회인식 구조에도 분명한 책임이 한 몫 있다고 본다. 혹여 미술계에는 엉터리 학력들은 없을까? 과거 외국에서의 전시경력은? 공모전들은? 설치물들은? 공공프로젝트의 운용은? 전시회 서문들은? 평론은?… 왜 이런 쪽으로 끝임 없이 의문이 생기는 것인가가 현 시대에 대한 생각의 한 단편이다.

그러나 여전히 열악한 여건이지만 힘들여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들이 있다. 누가 지켜보지 않아도 준법을 준수하는 마음으로 자신에게 냉정함을 잃지 않고 길을 가는 사람들, 그런 작가들이 좀 더 존경스러운 계절이다.


1. ‘종촌 가슴에 품다.’

 공공미술 프로젝트 2007.7.20-8.2 종촌리 남면사무소 주변 상가


미술 공공 프로젝트는 과거 야외 설치미술의 개념과는 여러 상황을 달리하고, 세분화된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만들어가는 공공 프로그램이다. 낙후된 지역이나 어느 특정 목적에 의해 세워졌던 시설물이 이주하여 나타나는 공동화 현상을 새롭게 단장하고 인구의 새로운 유입을 유도하고자하는 일환의 사업으로 하기도 한다.

공동체를 위한 미술은 최초 주술사에게서 시작되었고, 그 뒤 주로 권력자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결과가 공동체로 환원되기 보다는 권력구조의 이익이나 체제유지에 기반을 주로 두었다고 본다. 공공미술은 내부로부터 출발할 수 있는 구조성립이 어렵기 때문에 예술가들이 어떤 특정한 공공장소나 공동체들과의 협업, 동반자 관계를 설정하고 그들과 함께 일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공공미술(Public Art)의 단계는 크게 다음과 같이 나누어볼 수 있다. 첫 번째가 도시의 일정한 공공장소에 미술품이 설치되는 ‘공공장소속의 미술(Art in Public Space)’ 두 번째는, 도시계획의 중요한 요소로 공공미술이 활용되는 ‘도시계획속의 미술(Art in Urban Design)’ 다음으로 미술이 지역공동체의 문제 속으로 들어가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단계의 ‘새로운 장르의 공공미술(New Genre Public Art)또는 공익속의 미술(Art in Public Interest)’이다.


이에 접근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협조적인 창작과 개량(改良), 개입(介入)적인 측면이 있다. 개량의 경우는 도시계획 속의 미술처럼 그 시행자가 국가나 행정자치단체에서 적극 개입과 추진이 되어야 하는 관계가 있다. 개입의 경우, 접근 방식의 논점 매우 많다. 공간을 공공영역으로 보아 건축, 교육, 문화시설 등을 같이 생각하는 접근 방법도 필요하다. 더 나아가 실재 시설과 새로운 공간 개념을  담아낼 수 있어 어떤 가능성도 배재하지 않는 것이 좋으며, 특히 네트워킹과 특정성이 담보 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공공미술은 공동체와 소통의 기반에서 보일 수 있는 소수자 문제, 교육, 정치, 환경, 분쟁, 지역사회, 재생 등 여러 사회와 개인 간의 문제에 예술이 개입하여 문제들을 부각시키고 자생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술이 지역과 사람들 사이에서 매개하며 문제를 공론화고 공유하여 촉발시키는 것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해야하는 의무를 가진다.


어느 지역이 수몰되거나 매몰될 때는 그와 함께 호흡해온 과거의 추억들이 사라지게 된다. 충청남도 연기군 종촌리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가 세워질 곳이 바로 그런 곳이다. 떠들썩하게 시작된 기공식 이면에는 오랫동안 살아온 주민들은 고향의 변화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마을 떠나야 한다. 이미 90%이상의 주민이 떠난 반 폐허의 ‘종촌’에는 부서진 잔해들과 여기저기 걸린 붉은색 글씨의 플래카드만이 힁한 공간들을 메우고 있었다. 이 마을의 생존 끝자락에 미술 프로젝트가 있었다. <종촌-가슴에 품다>는 1억 5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이날 모인 200여 명의 주민들은 풍물패와 인디밴드 등 특별 공연과 종촌리를 주제로 한 영상물과 작품들을 보면서 마지막 풍경들을 가슴에 품었다. 설치미술, 조각 영상 사진을 포함해서 다양한 장르의 작가 29명이 참여하여 총 150여 작품이 출품됐다한다. 행정도시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지역 개발이 아닌 기억의 자료적인 것이겠지만, 보존에 대한 이슈를 끌어낸 점과 그리고 간과하기 쉬운 주민마음을 파고드는 접근법으로 공공미술의 또 다른 선례가 되는 듯하다.

우선 이곳에서 첫번째 보이는 전재홍의 작품이 눈에 띠었다. 1977년 처음 문을 열어 대를 이어온 주민 김한숙의 '수다방' 단층건물이 하얀색으로 도색되었다. 그동안 낡고 퇴색했을 건물을 온통 하얗게 바꾸어버린 것이다. 건물이 부서지고 이사해야하는 이 시점에 오히려 재건된 작은 미술관을 만든 것이다. 아이러니한 시기에 새로 태어난 이 건물의 작품명은 <미술관 속 미술관>이다. 폐허속의 미술관인 다방 입구에 서면 10센티 가량의 구멍 뚫린 하얀 비닐이 내려져 있다. 구멍 속으로 안을 들여다보면 지난 시간 이사전의 다방 내부가 흑백으로 인화되어 좁은 다방내부를 가리고 있다. 지난 시간이 담긴 사진의 위력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 듯하다. 오랜 때가 묻어있는 소파들과 찻잔의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그림1] 전재홍, <미술관 속 미술관>, 수다방 건물에 도색, 2007   

 

 

            [그림2]전재홍,<미술관 속 미술관>, 수다방 내부에 사진설치, 2007




1980년대 초반부터 대를 이어 경영을 시작하고 2007년 이주했다는 이곳 다방 미술관의 작품 뒤 공간에는 이사후의 썰렁한 흔적만 남아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방 문을 향해 앉아있는 주인 여성의 사진은 이미지의 오랜 기억으로 뇌리에 남는다.

그 골목을 조금 돌아 맞은편 위쪽으로 면사무소 정면 옆 '바른손타올' 2층 건물에 1층에 김억의 작품이 있었다. 전형적인 탁본 기법을 동원하여 이 마을에 사용되던 간판과 묘비명 등 탁본이 될 만한 흔적들을 자료화하여 벽면 가득 붙여 놓았다. 간판이나 묘비명 등은 개인이 만들었으되 한 개인이 보았던 것이 아니며, 매년 갈아 끼우는 현대식 간판과는 또 다르다. 공동체 생활에서 주로 이용되었으나 지금은 아련한 목 간판들이 이 동내에는 아직도 현존하고 있었다. 많은 주민들의 시선과 오랜 세월을 견디었을 시간의 축적이 카피되어 눈앞에 있었다. 한지와 먹물에 의한 글자들은 어느덧 세월을 넘어 또 다른 시간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이 2층 전시공간에는 여경섭이 작품을 만들었다. 남이 사용하던 거울은 가져오지 않는 것이라던가. 아마 거울 속에 자주 비추어 보던 사람의 기운이나 혼이 담겨있다고 생각한 선조들의 말이 아닌가 싶다. 2층에 들어서자 좁은 공간이 미로처럼 보인다. 거울에 거울이 반사되고 들어선 감상자의 이미지가 겹치고 미로로 달아난다. 열려진 좁은 창문으로 빛이 들어온 것일까. 바닥에 분할되어 붙여진 거울들은 제각각의 형태를 이룬다. 또한 어느 거울에 모서리나 중앙에는 '축 개업', '축 발전'등이 흰 페인트로 쓰여 있다. 시각적인 의미에서는 테크니컬한 신디사이저의 효과를 보이는 착각을 일으키게도 한다. 반사와 반사 속에 비친 내이미지와 시골마을의 폐허와 거울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림에 슬며시 소름이 돋는다.

그 외 많은 작가들은 주민과의 교류와 지난 시간을 떠올렸고, 새싹에 의한 희망을 이야기 했으며, 삶을 산 흔적들을 마치 유적을 발견하는 태도를 가지고 작업에 임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삶에서 시간과 공간이 여러 가지로 교차되며 변화하는 순간이 수 없이 많이 이루어진다. 툴툴 털어버린 공간에 시간의 누적인 추억과 얽힌 인정이야 어찌할 수 없겠지만 미술이 기록으로써, 추억을 앞으로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각성과 각오로써의 치유가 되었다면 신도시를 만드는 틈새를 순발력 있게 포착하고, 적절하게 진행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모든 이에게 찬사를 보낸다.

 

[그림3]김억, <종촌-그 기록들>,2007

 

[그림4]여경섭,(Memoryscope>,2007

 

2. 미래의 기억

김용 전 2007. 8.16-22 롯데화랑


한 사람이 자기의 끝임 없는 삶의 반경을 추적해 나가는 것 중 하나가 그림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있다. 삶의 행로는 많은 일들이 발생하며 주변과의 교묘히 적용되는 관계에서 그 시간들이 나열된다. 유년시절의 기억이 형상화되는 가장 고루한 방법에서부터 판타지와 시간의 질곡을 디지털화하여 나타내기도 하고, 미래의 인간 감수성의 표출이라는 모티브를 전재하기도 한다.

많은 시간들 중에는 지난 시간에 대한 아련함과 버리기 어려운 기억들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나이가 들수록 어린 유년과 지난 추억에 대한 회상 정도가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아트부분에는 이러한 기억들을 형상화 하거나 이야기화한 작업들이 많다. 회상의 심리 이용하기는 과거 시간흐름의 아득한 기억이나 추억, 그리고 소망했던 일들을 떠 올리며 지난 세월에 보내는 아쉬움이 절절한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다. 유년추억의 흔적은 꿈과 놀이이다. 인간의 원천적인 소통이 시작되던 시기였기에 그만큼 이야기의 내용이 아득한 만큼 아련한 것이리라.


김용의 파편적인 조각그림이 그러한 유년에서 출발한다. 조각그림에 등장하는 기호화된 사물의 형태들은 강아지, 나비, 자동차, 종이배, 장난감 나팔, 등등이지만 이전의 전시회에 비해 유년을 넘어선 형태를 보여준다. 화면에 등장하는 소재들은 소박하다 못해 보편적이다. 이러한 소박하고 보편적인 것들의 선택은 작가의 소박한 유년과 결부하여야 할 것이다. 유년시절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자라던 농촌마을에도 좀 더 순박한 곳과 약간 드센 곳이 있다. 그야말로 우리가 현재 꿈을 꾸듯 동경과 이상향처럼 떠벌리는, 못살지만 순박했던 동네와, 거칠지만 경제력이 그런대로  오가던 시장과 강한 바람과 억센 사람들의 어촌마을 등 그 유형은 많다. 그러나 제각기의 어린 유년도 시류의 흐름에 따라 대동소이하게 이야기에서는 변하고 마는 세태가 되었다. 반면 김용의 어린유년은 소박한 농촌마을이었음을 말한다. 그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그림에는 강한 어조나 사회에 대한 질타성 형상들은 보이지 않는다. 1990년 초에 시작된 <흙으로부터>의 연작들은 어린 시절로부터 출발한다. 릴리프 기법을 이용한 한지의 성형과 조각보에서 보이는 면 분할의 색채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사용법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다른 작가들이 이미 수없이 다루어온 모티브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특이할 것은 없었다. 그러나 <유년의 꿈>2006에서는 한지의 특성과 긁어냄과 먹물의 번짐, 그리고 간략화 된 기호적 도상들은 형상성 먼 옛날의 문자들을 연상하게 한다.

때로는 민화民畵에서, 암각화에서, 동굴벽화의 필선의 기운에서, 고지도의 목판에 의한 별자리와 산과 들의 기호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그것들에서 유년의 시간을 각인해내는 기법을 익힌듯하다.


 

[그림5]김용, <유년의 꿈>, 순지에 채색, 220x136cm, 2006



  

이러한 기호적 유년의 낙서화 내지는 동심화를 한국미술에서는 곧잘 찾아 낼 수 있다. 울산 반구대의 암각화나 삼국시대의 토우, 불교의 동자 상들이 그 연원이며, 가깝게는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과 박수근, 장욱진의 그림에서 엇비슷한 개념의 「추억 향수」적인 모션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그 작가들은 자신만의 화법이나 시각세계를 찾아 추구한 결과들로서의 독창적인 감수성을 열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를 따르는「추억 향수」들의 한국적이고 토속적임을 강조하며, 만드는 어설픈 감성들에 의해 약간 다른 유형들로 둔갑하여 대중의 심금에 접근한다는 점이다. 「추억 향수」들은 신토불이와 더불어 대중의 감수성을 한곳으로 몰고 가는 나뿐 습성이 있다. 가장 대중적인 분위기와 한국전쟁 이후의 사회맥락, 그리고 흐트러진 문화의 갈피를 못 잡음의 틈새는 바로 「추억 향수」에 의해 채워진 결과를 가져왔다. 시장의 모습, 소와 들녘, 아낙네, 강아지와 아이들 등의 모티브를 한국적인 정서의 모두인양 그림의 정서로 고착된 서정의 분류들이 바로 그것이다. 문화는 다양한 코드를 지양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방향의 인식들이 표출되고, 다양한 인식아래 새로움이 탄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용은 그 맥락의 접점에 위치한다. 감수성의 절절한 끌어당김이 아니라 감성의 기호적인 선상에 서 있다. 때문에 다양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느낌보다는 관조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전통적이라는 한지와 오방색의 사용이라는 근원적임을 굳이 드러낼 필요도 없다. 작가 자신은 재료의 중요성으로 다가오겠지만 보는 감상자에게는 부스스한 듯 그어진  필선이 좋고, 색채를 품는 한지의 재료적인 넉넉함이 좋아 보인다. 그림들은 파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의 기억이 만들어낸 조각이든, 인위적 조형의 조각이든 그 조각들이 모여 덤덤한 개체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기억의 파편들에는 타인의 기억이 선뜻 관여하지 못한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질질거리는 추억감성과 관조자의 접점에 있는 요소가 된 것이라도 생각된다. 그러나 앞으로는 유년의 관조자가 되지 말고 좀 더 도발적인 감성과 그의 2006년 개인전의 서문에도 보이듯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여행하고자하는 정신의 상징”과 같이 이러한 세계를 넘나드는 그런 작품들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곁들여 하고 싶은 말은 작품들이 너무 일찍 늙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림6]김용, <미래의 기억>, 순지5배접 채색, 릴리프기법, 2007


3. Re- record

오윤석 전 2007. 8.14-27, 반지하 갤러리


반지하 갤러리는 대전지역의 유일한 대안공간으로 자리한다. 이념과 이론이 개입되지 않고 순수한 재미있는 그림놀이터로 만든 공간이 반지하라서 붙인 이름이 ‘반지하’이다. 전시공간의 운영방식에 따라 이름이 붙여지기도 하지만 굳이 대안공간임을 사양한다면 그냥 전시놀이 공간이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래도 대안공간이다. 이 시대의 미술은 경계를 넘나드는 멀티플한 선상이나 이를 통한 과학과 음악이 조우하며 다양한 측면으로 시도되고 있다. 반지하를 이끄는 이들은 그 어느 과거의 미술적 영향에도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취향의 작가들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특성에 의해 그 독창성을 간직하는 곳이다.

미술 전시장은 변화하는 미술개념과 그 요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문화적인 효율성과 통합성을 꾀할 수 있는 복합 기능의 유형을 고려하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서울이나 부산 등지에서는 신진작가들의 대안적 예술 활동을 수용하고 지원하는 대안공간과 창작 스튜디오가 활성화된 가운데, 복합 문화공간인 다채로운 형태의 미술 공간 개념이 도입 된지 오래 되었다. 대전에도 이러한 공간을 본보기 삼아 좀 더 여러 유형의 운영과 전시형태를 갖춘 전시공간이 형성되었으면 한다.


오윤석의 이번 작품은 완당 김정희의 금석학적 학자의 멋이 우러나오는 작품들을 다시 복재하여 예리한 칼로 그 윤곽선을 오려내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미술의 한 방법이 모방에 따른 재현의 문제를 꾸준히 지속하는데 반해, 현재는 여러 이미지 '옮겨심기'와 변형들이 눈에 띠는 대중적인 코드로 많은 방법들을 접하게 된다. 오윤석은 이러한 코드를 과거 미니멀리즘적인 단색과 배합하는 경계에 서기를 원하는 눈치이다.

"조각칼로 나무를 조각내어 파듯 김정희의 글과 뜻을 종이에 새기고 파낸다."는 심드렁하지만 심층적인 고백은 기억의 형상화로서 또는 '글씨를 재기록하며 소통'한다고 생각한다. 얇은 종이에 김정희의 먹 자국을 카피한 외곽선을 따라 파내며 나타나는 무중력적인 빈 공간을 즐기는 듯하다. 이를 통해 빛이 새어나오고 전시되는 공간에 환영의 또 다른 김정희의 복제본이 투영됨도 즐긴다. 선禪적인 냄새를 피우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만 세세히 뚫린 김정희의 작품 복제의 복제본 사이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어딘지 모르게 8월 태양의 공허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전시장 밖의 나의 시각은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

 

[그림7]오윤석, , 종이,아크릴, 2007

[그림8]오윤석, , 전시장면,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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